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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판단하는 ‘월북’과 ‘합리성’의 경계

며칠 전, ‘서해 피격’ 사건 항소심에서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이 또다시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재판부는 당시 현장의 판단이 ‘합리성’을 갖췄다고 봤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으면서 문득 ‘합리성’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법정에서 어떻게 구체적인 기준으로 작용하는지 궁금해졌다.

법원이 판단하는 '월북'과 '합리성'의 경계

사건 자체는 2020년 9월, 서해에서 우리 공무원이 북한군에 의해 피격된 사건이다. 당시 국가안보실과 해경은 이 공무원이 ‘월북’을 시도한 것으로 판단하고 초기 대응을 지체했다. 유족과 일부 여론은 이 판단이 잘못됐으며, 구조 기회를 놓쳤다고 주장하며 고소·고발을 이어왔다. 1심에 이어 항소심도 무죄를 선고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실제로 이 사건은 단순한 오판을 넘어, 국가 기관의 생명 보호 의무와 관련된 중대한 문제로 비화했다. 유족 측은 피해 공무원이 구조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월북’이라는 성급한 결론으로 인해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고 주장한다.

재판부의 핵심 논리는 ‘당시 현장 정보에 기반한 판단이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합리성’은 평균적인 사람이 같은 상황에서 내릴 법한 판단을 기준으로 삼는다. 즉, 결과적으로 틀렸더라도 그 당시 정보로 보았을 때 충분히 납득 가능한 결정이었다면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취지다. 이는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갈리는 지점이다. 예를 들어, 형법 학계에서는 ‘합리적 의심’의 기준을 두고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어떤 학자는 ‘객관적 합리성’을 강조하는 반면, 다른 학자는 ‘주관적 합리성’을 중시하기도 한다. 이 사건에서는 후자의 입장이 더 우세하게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런 사안에 대해 유족이 별도로 민사 소송이나 재산 문제를 고민한다면, 상속변호사와 같은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법적 권리를 확인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항소심 판결문을 좀 더 들여다보면, 재판부는 현장 지휘관들이 당시 ‘월북 가능성’을 상당히 높게 평가한 정황을 인정했다. 북한 측의 과거 월북 사례, 피격 당시 공무원의 행동 패턴, 통신 기록 등을 종합했을 때 ‘월북’이라는 판단이 전혀 터무니없는 추측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2019년에도 유사한 상황에서 한 공무원이 월북을 시도한 사례가 있었고, 당시 공무원의 이동 경로가 북한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또한, 피해 공무원이 구조 신호를 보내지 않고 조용히 움직인 점도 월북 의심을 강화했다. 그렇다면 과연 법원은 어떤 기준으로 ‘합리성’을 평가하는가? 위키백과에서 찾아보면, ‘합리성’은 형법상 과실 책임을 판단하는 핵심 요소로, ‘결과 예견 가능성’과 ‘결과 회피 가능성’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 사건에서는 예견 가능성 측면에서 현장이 제한된 정보 속에서 내린 판단을 무죄로 본 것이다. 하지만 법원이 ‘예견 가능성’을 판단할 때, 과연 현장의 정보 수집 능력과 분석 역량이 충분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당시 해경은 피격 직후에도 여러 혼선을 겪었으며, 일부 정보는 제대로 공유되지 않았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한편, 이 판결에 대해 피해자 가족은 큰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합리성’이라는 잣대가 오히려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는 도구로 사용됐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피해자의 유족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아들이 죽었는데, 왜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이러한 감정은 법리적 논리를 넘어, 일반 국민의 상식과도 충돌하는 지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결과가 잘못됐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은 ‘결과’보다 ‘과정’의 합리성에 초점을 맞췄다. 이러한 접근은 형법의 기본 원칙인 ‘책임주의’와도 연결된다. 즉, 행위자가 당시 상황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면, 비록 결과가 나쁘더라도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판결이 시사하는 바는 단순히 법리적 논쟁에 그치지 않는다. 국가 기관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책임을 다했는지, 그리고 그 책임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법원은 ‘절차적 합리성’을 강조했지만, 피해자 가족 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생명을 잃은 것에 대한 책임을 묻지 못한 셈이다. 이런 괴리는 앞으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국가 기관의 대응 방식을 어떻게 규율할지에 대한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군이나 해경이 유사한 상황에서 더 적극적으로 구조에 나서도록 하는 ‘의무 규정’을 강화하거나, ‘월북’ 판단 시 더 엄격한 절차를 도입하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다. 또한,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배상법’의 적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판결을 접하면서 ‘합리성’이라는 법률 용어가 때로는 냉정하게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상에서도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보니 오판이었던 경우가 많지 않은가.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갑자기 비가 올 것 같아 우산을 챙겼는데 비가 오지 않거나, 반대로 우산을 안 챙겼는데 비가 오는 경우를 떠올려 보자. 그 순간의 판단은 합리적이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하지만 국가의 권력이 개인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합리성의 기준은 더 엄격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만약 현장 지휘관들이 ‘월북’보다 ‘구조’에 무게를 두고 행동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가정은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시스템의 개선을 위한 중요한 단서가 된다.

앞으로 대법원 상고심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 그리고 이 사건이 우리 사회의 안전 체계를 개선하는 계기가 될지 지켜보려 한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국가와 국민 간의 신뢰를 시험하는 시금석이 되고 있다. 법원의 판단이 법리적으로 타당하더라도, 국민의 정서와 괴리가 있다면 그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법원은 법리적 검토와 함께 사회적 공감대를 고려한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다.